I have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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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9 NHN USA 대표, 김범수 (12)
  2. 2007/02/05 NHN CSO, 이해진 (15)

NHN USA 대표,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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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1966년생. 올해로 42세이다. SNU IE로 학사를 마치고 이어 SNU IE로 석사를 졸업하였다. 석사논문은 "PC통신시스팀의 성능평가를 위한 모형화 및 분석" 이라는 논문으로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후배의 자취방에 들른 게 오늘날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PC통신 태동기였던 당시 10명 정도가 동시 접속해 채팅 등을 하도록 지원하는 네트워킹 시스템인 사설 BBS(Bulletin Board System)를 보고 새로운 눈이 뜨게 되었다고 할까. 그래서 전공은 IE인데 PC 통신 관련 논문을 썼다고 한다. (열람은 서울대생이나 교직원만 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못 봤음ㅠ)  당시 남들은 잘 나가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지원했지만 컴퓨터 분야가 승산이 있다는 막연한 일념으로 졸업후 병역특례 보충역으로 1992년에 삼성 SDS를 입사하여 (그 때 당시 석사병특이면 5년인가? 3년 된게 작년부터인가 그러니까..;; 잘 모르겠군.) 1998년까지 약 5년 넘게 삼성 SDS에서 일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건 "1992년에 양식편집기 ‘Form Editor’ 개발, 1993년에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관리 시스템 개발, 1996∼97년 유니텔 에뮬레이터 유니윈 2.0, 유니윈 98 설계 및 개발" 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시대가 PC 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바뀌고 있음을 직감하고 1998년에 사표를 내고 나와 "한게임" 이라는 회사를 창업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게임커뮤니케이션) 왠지 삼성 SDS에서 5년 일하신게 딱 병특 마치고 나오신 느낌~^^ 아니면 뭐 아닌거고;; "한게임"은 국내 최초 게임포털으로 "온라인 게임 포털"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에 네이버컴과 합병을 하여 NHN이란 회사를 만들고 이해진 씨와 공동 대표가 되어 이해진 씨는 네이버 부문, 김범수 씨는 한게임 부분의 대표가 된다. 그 후 2004년에 단독 대표가 되었다가(이해진 씨는 CSO로..) 현재는 NHN USA 대표로 있다. (CEO는 최휘영 씨.)

여기서 잠깐!

한게임의 창업자이며 NHN의 공동 대표였다가 NHN 단독 대표까지 하신 분이 왜 CEO라는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훨씬 낮은 NHN USA 대표라는 자리로 갔을까? NHN USA 라는 건 NHN의 하나의 지사에 불과한거잖아? 라고 의아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다. 다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는 상황에서 그는 자진해서 내려온 거니 말이다.
그러나 이건 NHN의 문화나 조직의 특성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몰랐다가(당연히 알 수가 없지..;;) 이번에 인턴을 하면서 알게 된건데 NHN은 조직이 자주 바뀐다. NHN이 인터넷 기업, IT 기업이라는 특성상 상황이나 흐름이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변하고 쉽게 변하고 자주 변하기 때문에 조직이 static하면 이러한 환경에 능동적으로 일일히 대처할 수 없게 되고 한다고 그래도 능률이나 효율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조직 구성이나 대표라던가 그런 것들이 자주 바뀌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휘영 씨와 함께 공동 대표였다가(최휘영 씨는 국내, 김범수 씨는 해외) 1월 초에 최휘영 씨가 단독 대표, 즉 NHN CEO가 되고 김범수 씨는 NHN USA 대표로 하는 그런 체계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한 거다.  김범수 씨가 미국 사업으로 인해 해외에 대부분 있는 상황에서 공동대표라는 건 어떻게 보면 의미없는 것. 그 직함에 연연한다면 계속 그렇게 하겠지만 NHN에서 직함이라는 건 다른 대기업처럼 그런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NHN에서는 조직이 위계적이지 않다. 흔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업 문화. 흔히 드라마 같은 데서 나오는 그런 상황들. 상사와 부하직원과의 관계라던가.(상사한테 결재 받으면서 욕 먹고 그래도 꾹 참고...뭐 그런 거;;) 사장이나 회장님 나가시면 막 일렬로 서서 인사하고 그러는 situation 같은 거. 그런 게 없다. 분명 조직이 존재한다. 조직도를 보면 무척이나 세분화 되어 있다. 분야별로 서비스별로 나눠져 있고 그 안은 센터가 있고 또 그 안에는 Lab이나 팀별로 나눠져 있고. 각각에는 또 "장"들이 있고. 단순히 조직도 만을 보면 대기업 못지 않은 위계적인 조직이구나 라고 생각이 들지는 모르겠는데. 실제 일하는 걸 보면 그렇지 않다. 우선 막 반말하고 갈구고 그러는 분위기가 없다. 기업 자체가 젊은 인력들이 많고 그래서인지 다들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고 모두들 직위는 다르지만 그 직위가 낮다고 해서 부려먹거나 그러는 게 아닌. 그렇다고 해서 체계가 없는 게 아니다. 체계는 있되 그 체계가 자유롭다는 거. 이걸 알게 되고 "아.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업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다가 NHN 찬양하는 글이 되어 버렸는데 NHN에 대해 느낀 건 나중에 한 번 썰을 풀어보도록 하고!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대표니 CEO니 하는 건 단순히 직함이라는 거. 김범수 씨는 게임 담당이고 지금 미국에서 게임포털을 성공시키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업의 총 책임자로 그냥 NHN USA 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게 된 거다. 현재 NHN의 게임 사업은 국내에서는 뭐 말할 거 없고(비록 경쟁자들은 많지만;;) 일본도 어느 정도 성공을 했고 중국은 합작법인이기 때문에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미국은 게임산업은 강하지만 온라인 게임포털이라는 분야는 볼모지나 다름없기 때문에 온라인 게임 포털이란 새로운 게임 사업이 자리만 잘 잡는다면 그 후로는 어마어마하게 성장할 것이다. 내 생각으로도 NHN에서 게임사업으로 해외진출에 성공을 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게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하기에 김범수 씨가 NHN USA 대표로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 그렇기 때문에 CEO를 사임하고 NHN USA 대표로 간 건 좌천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한게임"을 창업한 것처럼 미국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 즉, 결론은 NHN CEO든 NHN USA 대표든 별로 관계가 없다는 거. 중요한 건 직위따위가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이니까. 이 한 마디하려고 참 길게도 썼군...;;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가 지금까지의 자리에 오기까지, 즉 성공하기까지("진행형" 이지만...;) 이유랄까? 기회랄까? 하여튼 그런 게 무엇인지 나름대로 또 정리해 볼려고 한다.

1. PC통신. 그리고 삼성 SDS에서의 유니텔 개발

김범수 씨는 산공과 출신이다. 학, 석사 모두 산공과인 그가 "한게임"을 창업하고 지금은 NHN의 게임사업을 책임지고 있다는 게 쉽사리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긴 그 스스로도 자신이 과연 이 길로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을까? 여러가지로 추측해보건대 김범수 씨는 컴퓨터는 어느 정도 할 줄 아셨고 관심은 있으신 것 같다고 볼 수 있다. (모르겠다. 매우 뛰어난 실력을 가지셨을 수도? 하여튼 컴맹은 아니셨다는 거;)
하여튼 그는 전공을 CS가 아닌 IE를 하셨다. IE, 산공과는 취업이 잘 되는 과로 유명하다. 취직하기에 유리한 과다.(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워낙 취직이 안 되서; 그러나 뭐 SNU IE 정도면~) 하여튼 90년대 초만해도 공대나 상경 계열 과들이 인기가 많았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물산"이나 "전자" 쪽 대기업을 가는게 소위 명문대 나와서 가는 코스라고 해야 하나.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그런 길이었다고 한다. (그 때만해도 수출이 호황이었고 대기업에 거품도 끼어있었기 때문에...그러나 IMF로 모든 게 바뀌었다. "물산"은 완전 인기 시들이 되어버렸다. 공대는 기피대상이 되고 "전자"도 삼성이나 LG 같은 기업만이 대우받고, 그 대신에 다들 공무원이나 공기업 같은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고 의대를 선호하고 완전히 바뀌어버렸지 ㅋ) 그런 시대적 배경에 서울대 산공과를 석사까지 졸업했으면 누구나 아 "삼성물산" 같은 데 가서 한 자리 차지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뭐 벤처란 게 유행했던 것도 아니고 누구나 대기업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이는 당연지사. 그런데 그는 삼성 SDS를 갔다. 그 당시만 해도 CS는 주력 산업도 아니었다. TV 같은 가전 제품을 만드는 "전자"도 아니고 해외를 돌아다니며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 일반인들에게는 개념조차 생소한 컴퓨터라... 분명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은 했을 거다. 특히 부모님 같은 경우는 더더욱. 뭐 그래도 "삼성"이란 대기업에 취직한거니까 그런가 보다 했을 수도. 이처럼 김범수 씨가 대략 예정되어 있던 길을 박차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보니 바로 "PC통신"이었다. "PC통신!" 이제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가 되버린 그 PC 통신. "띠띠띠...뚜..뚜.." 그 연결음 소리와 함께 뜨던 파란 창이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진 지 오래이다.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는 PC통신 사용했는데...아...그리운 추억ㅠ) 하여튼 그 PC 통신이 91~92년이면 태동기였다. PC통신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실 거다. 그 PC통신만의 매력을! 이 매력에 김범수 씨는 푹 빠져버린 거다. 인생을 바꿔버릴만큼..^^; 그래서 산공과임에도 불구하고 논문도 PC통신 관련 논문을 쓰고 취직도 삼성 SDS로 한 것이다.
그가 대학원 시절에 PC통신을 접하지 않아서 그냥 산공과 논문을 쓰고 "물산" 같은 기업에 취직했으면 "한게임"도 안나왔을거도 NHN도 안 생겼을 거고...ㅋㅋ 이래서 사람 인생은 재미있는 거고 한 길 앞을 모르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믿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자에게 기회도 오고 운도 오고 성공도 오고 그러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는 삼성 SDS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 곳에서 그는 유니텔 개발을 했다. 퇴사하기 전까지 유니텔의 프로그램개발부터 기획, 설계, 정보기획, 유통 등 안해본 분야가 없을 정도로 유니텔의 모든 것을 담당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엔지니어로써 프로그래머로써 완전히 전직을 하게 되고 더불어 한걸음 더나아가 기획, 마케팅 등을 두루 담당하게 되면서 사업가로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터득하게 된다. 유니텔이 PC통신 후발주자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인기를 얻어 나중에는 1위인 천리안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하긴 나도 예전에 천리안 쓰다가 유니텔로 바꿨으니^^;;) 그는 유니텔을 통해 PC통신에 관한한 전문가로 올라서게 된다.

2. 한게임 창업

1998년, 그는 삼성 SDS를 박차고 나왔다. (헐...;;) 그렇게 그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나왔는데 (그것도 IMF 시기에...)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을까?  그는 삼성 SDS에서 5년여간 PC통신 담당을 하면서 PC통신은 전문가가 되고 인터넷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며 이 인터넷이라는 것을 통해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가 삼성 SDS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나오게 된 거에 관련된 기사가 있어서 첨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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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출처 :
www.inews24.com 의 [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

◆ “다단계 판매를 아시나요”

“여보, 다단계판매를 나쁘게 생각지 말아요. 그냥 한번 들어봐요” 97년께, 아내의 손에 이끌려 다단계판매회사의 교육장에 들어선 김범수는 이때부터 그만의 독특한 꿈을 만들어간다. 김 사장은 늘 “꿈꾸는 자만이 자유로울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스스로를 “아직도 꿈꾸는 자유인”이라고 표현할만큼 늘 꿈을 꾸며 살아간다. 이런 김범수 ‘꿈철학’의 근본은 1년간 빠져들었던 다단계판매에서 비롯된다. 그는 여기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허황된 꿈이 아닌, 아주 현실적인 꿈을 꾸기 시작한다. “10년후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김범수가 삼성SDS를 그만두고 홀로서기에 나선 것은 다단계판매회사에서의 ‘독특한 꿈꾸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단계판매에 빠져들면서 ‘10년후 삼성에서의 자신의 모습과 비전, 꿈’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된다. “다단계판매를 알고부터 삼성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우물안개구리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10년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니, 답이 안나왔죠. 전 그때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일탈’이었다. 위기를 느낀 김범수는 98년 9월, 무작정 사표를 던졌다. 물론 생각해둔 사업 아이템은 있었다. 그가 생각한 사업모델은 97년께 유니텔서비스를 하며 겪은 한 이벤트가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했다.

“당시 유니텔에서 OX 퀴즈를 실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이벤트형식인데 무려 7만여명이 참여하는 걸 보고 있는데, 속된 표현으로 사업적인 ‘필(Feel)’이 오더라구요” 그리곤 게임을 생각해냈다. “그전까지 게임은 중독된 일부 사람들만이 이용했죠. 하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면 이런 게임을 불특정 다수인 대중들이 좋아할거란 확신이 들더라구요”

한게임의 비즈니스모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미 5년여간 유니텔을 운영하면서 PC통신 이용자의 습성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고,개발 및 고객만족을 위한 서비스 등 PC통신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두루 섭렵한 상태였다.

초창기 PC통신,인터넷 전문가로서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새로운 인터넷세상과 다단계판매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고민해온 김범수는 이미 홀로서기에 필요한 ‘워밍업’을 끝낸 준비된 CEO였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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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삼성"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고 성공할지도 모르는 진짜 "사례"조차 없는 사업을 한다는 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일까? 더군다나 그는 결혼까지 한 상태였다. "NHN CSO, 이해진" 이라는 글에서도 말한 바가 있듯이 창업을 해도 젊을 때, 혼자일 때는 시도해볼 수 있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매우 힘들다 라는 말을 했었다. 이는 당연한 거. 창업이 성공하면 모르지만 실패하면 가족이 다 나앉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리스크가 큰 일을 하려고 마음먹는 다는 게 쉽지 않고 마음먹어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더더욱 어렵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고 나도 마찬가지다. 요즘 사회 풍토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다들 의사, 공무원, 전문직, 선생님 같은 안정된 직업을 선호하는 것. 그런데 그는 정반대로 대기업을 때려치고 그것도 유니텔로 인해 인정까지 받은 상황에서 미련없이 나온 거. 그는 자신이 판단한 게 맞다고 믿고 흔들림 없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게 차이점이다. 그는 곧 인터넷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 후, 그 시대에 어떤 사업을 해야 성공할까? 고민을 하고 "인터넷 + 게임"이라는 아이템이 가장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고 판단하자 바로 그 길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역시 인생을 성공하려면 "승부사" 기질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자신의 판단을 믿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위험을 무릅쓰고 가는 것. 그러나 여기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어떠한 유혹이나 위기, 위험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도록 그 길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공부하여 철저히 분석을 하는 것. 아무 판단이나 근거 없이 무모하게 시도하는 것은 마치 "불나방이 불을 향해 뛰어드는 것" 이라고 볼 수 있지. "묻지마" 투자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고..99년의 IT 버블도 그런 종류고.
하여튼 그는 미래를 주도할 네트워킹은 PC통신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걸 확신하고 이 인터넷이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만큼 이 특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은 바로 "게임"이라고 판단하고 국내 최초 게임 포털인 "한게임"을 창업하게 된다. 창업하기를 결심하고 약 1년 후에 창업을 하고 그 후로 약 1년여간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이에 관한 기사가 있어 역시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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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출처 :
www.inews24.com 의 [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

◆ 창업, 놀라운 생존본능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를 위해 다같이 승부를 걸어보자” 99년봄, 삼성동 휘문고옆 허름한 10평 남짓한 사무실. 김범수는 5명의 직원을 모아놓고 엄포를 놓고 있었다. 이보다 앞선 98년 2월, 교대근처 오피스텔을 얻어 사업을 시작한지, 1년만의 일이었다. 유일한 수익사업인 개발대행으로는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다는 판단아래 게임개발에 총력전을 펴기로 마음먹었다. 6개월여간 온라인게임 개발에 목숨을 걸었다. 김범수의 사업모델은 아주 간결했다. 오프라인에서 검증된 대중적 게임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 바둑,장기부터 개발했다. 지뢰찾기, 테트리스, 고스톱 등도 준비했다. 사업 초창기인 98년초는 IMF직후라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집사람이 늘 사무실에서 밥을 지어 식솔들을 거두어야했다.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다보니, 하나둘 퇴사, 98년말에는 문태식씨 딱 1명만 남았다.

이때부터 김범수의 사업적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98년말 대변신을 시도한다. “이렇게해서는 안되겠다 싶더라구요.뭔가 자금적인 측면의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발상부터 독특했다. 그는 PC방사업에 직접 뛰어든다. 당시는 PC방사업이 막 뜨기직전. PC방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고, 개발한 게임을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 후일 한게임이 PC방을 중요한 마케팅기반으로 잡을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경험때문. 그는 98년 6월, 한양대앞에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PC방을 오픈했다. 김 사장은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로 그럴 것이 사채까지 끌어들여 당시로서는 큰 규모인 무려 2억4천만원을 투자, 시작했기 때문. 다행히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범수는 PC방사업을 통해 어렵사리 사업밑천을 마련했다. 98년 11월, 자본금 5000만원으로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소문이 나면서 PC방 프로그램 프랜차이즈사업도 일부 병행했다. 이미 PC방관리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개발, 운영해온 탓에 프로그램을 달라고 손을 벌리는 PC방이 한두군데가 아니었기 때문.
하지만 PC방사업을 통해 엄청나게 돈을 벌었지만, 김범수는 5개월만에 PC방사업은 아내에게 맡기고, 게임개발에만 전념키로 결정했다. 99년봄이었다. 훗날 한게임의 대명사가 된 고스톱과 바둑 등이 이때부터 6개월간 집중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다. 99년 12월 무료서비스를 시작했다. PC방을 활용한 마케팅방식은 그의 사업적 감각을 잘 보여주는 대목. 김 사장은 전국 PC방에 관리프로그램을 공짜로 깔아주는 대신 한게임을 PC방 컴퓨터의 초기화면에 띄우는 조건을 제시했다.

돈주고도 구하기 힘든 관리프로그램을 공짜로 깔아준다니 마다할 업주가 없었다. 그리고 삼성SDS 입사동기인 네이버 이해진 사장과도 공동마케팅에 나섰다. PC방 컴퓨터에 네이버프로그램을 깔아주면서 초기화면에 한게임 아이콘을 설정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네이버와의 공동마케팅은 후일 두 회사 합병에 중요한 단초가 된다. 게임은 PC방 고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서비스개시 3개월만에 무료 회원수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대성공을 거둔다. 서비스개시 한달만인 2000년 1월, 한국기술투자로부터 1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3개월만에 회원수 100만명을 돌파한 것은 닷컴비즈니스에서 사상초유의 일이었다. 2000년 2월에는 200만명으로 늘어나는등 한게임은 외형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지만 김범수 사장은 이 때부터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다. 남다른 감각이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말 절박했죠. 당시는 기획과 영업,빌링파트의 인력은 전무하고,그저 서비스를 하는쪽 인력 20명이 고작이었거든요. 즈니스모델도 만들어야 하고, 유료화도 해야하는데 전혀 준비가 안돼 있었죠”

외형이 급속도로 커지던 당시가 가장 절박한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술회한다. “그 때는 회원수가 하루에 10만명씩 늘 였습니다.회원수가 곧 1,000만명이 될게 뻔했거든요” 는 회사가 성장하는데 본인이 걸림될이 될수도 있고,본인 때문에 회사가 망할수도 있다는 절박한 생각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단다. CEO를 물색했지만, 또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2000년을 넘어서면서 벌써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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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번째 도박을 했다. 첫번째 도박이 삼성 SDS를 때려친 것이고 두번째 도박이 PC방 사업을 한 것. "인터넷 + 게임"을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한 걸 "
혜안[慧眼]" 이었다고 보면 PC방 사업을 한 건 무모함에 가까운 "도박에서 감을 믿고 한 번 걸어보자!" 는 그런 case. 98년이면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인데 1998년에 생긴 역사적인 사건. 바로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것 이다. 그전까지도 PC게임은 많았고 전략시물 같은 것도 워크래프트나 C&C 대작들도 있었지만 이 게임들은 다들 집에서 혼자 플레이할 뿐이었다. 조금도 진보된 게 "모플"이라 불리웠던 모뎀 플레이. 그러나 이 "스타" 가 뜨게 되면서 PC방은 전국 각지(해남 땅끝에도 PC방이 여러개일 정도로)에 몇 블럭마다 하나씩..정말 많이 생겼다. 진짜 우리나라처럼 단위면적당 PC가 많은 나라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이 PC방 문화의 일등공신이 "스타"라는 것도 이제는 누구나가 알고 있고^^; PC방 붐이 불면서 학생들은 학교 끝나고 우루루 PC방으로 가게 되어 "스타"를 했다. 그러나 여학생 같은 경우는 "스타" 같은 게임이 친숙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이 다 "한게임"의 테트리스를 하고 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처럼 그는 PC방이 활성화되기 이전, "스타"가 나오기 이전. 그 이전이지만 그렇게 오래 전은 아닌 한 몇개월 전. 국내에서 가장 큰 PC방을 오픈했고 그 후 "스타"가 뜨고 PC방 붐이 일면서 수많은 PC방에 관리 프로그램을 깔아주면서 "한게임"을 시작 페이지로 하면서 PC방에서 "한게임"이 뜨게 된 것이다.
지금 보면 정말 운의 연속이라고 밖에는...^^; 이중 하나라도 실패했으면 "한게임"이 뜰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래서 창업이란 건 위험하고 스릴넘치고 때론 무모하기도 하지만 성공을 하게 되면 어마어마한 보상과 쾌감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gamble" 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쾌감을 느끼는데 내가 직접 그 주인공이 되면 어떨까? 이래서 내가 창업의 꿈을 꾸고(아직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있는 거 같다^^;
하여튼 "한게임"은 떴다. 너무 빨리 떴다. 기뻐해야 할지 불안해야 할지. 회원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를 감당할 인력이 없었다. "인터넷 게임으로 사업을 해보자" 까지는 생각을 하고 준비해왔지만 그 후 성공해서 이 사업이 커졌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되는지. 본인도 전혀 경험이 없었고 준비도 안 한 상태에서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찾아와버린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또 한 번의 기로에 노이게 된다.
이대로 감당못해 여기서 무너져버릴것인지, 이를 기회로 삼아 더 크게 될 것인지.

3. 네이버와의 합병. 그리고 NHN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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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출처 :
www.inews24.com 의 [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

◆ 김범수의 승부수, 네이버컴와의 합병

“두 회사가 피를 섞으면 시너지가 엄청날 것입니다”

2000년 2월말, 강남역 인근 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던 김범수와 이해진. 둘은 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 네이버컴 합병문제를 놓고, 김정호(현 NHN 이사)씨의 얘기를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김씨는 삼성SDS를 거쳐 네이버컴에 근무하고 있던 인물로 누구보다도 두 사람을 잘알고 있었다. 한게임과 네이버컴의 합병은 그렇게 논의를 시작한지 한달만인 그해 4월께 공식 발표됐다. 가장 성공적인 M&A사례로 꼽히는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두 회사는 이미 PC방 공동마케팅을 하고 있었고, 한게임을 네이버사이트에 제공하는 대신,네이버컴은 장비를 한게임쪽에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었다. 둘은 합병을 통해 서로의 절박한 위기상황을 해결할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루에 10만명씩 회원수가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이를 소화할 준비가 안돼있는 한게임쪽의 절박한 위기의식,이미 10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수익모델부재와 다음, 야후, 라이코스에 늘 밀려 골머리를 앓고있던 네이버컴의 한계상황이 서로 맞아떨어진 것.

한게임은 네이버컴의 풍부한 자금과 인력을 활용해 폭증하는 트래픽을 소화하면서 사업을 확장할수 있을 거라 판단했고, 네이버컴은 수익모델부재를 한게임을 통해 해결하고, 한게임의 엄청난 트래픽과 회원수를 이용, 포털사이트 만년 5위의 한계를 극복할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

입사동기이자 친구인 둘은 그렇게 한달만에 합병에 합의했다. 합병이후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잇따른 유료화의 성공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매출성장세로 이어졌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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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 CSO, 이해진" 에서도 얘기했듯이 한게임과 네이버의 합병은 정말 성공적이었다.  위 기사에서도 나와 있듯이 한게임의 부족한 인력을 네이버에서 소화하고 수익모델부재를 한게임으로 해결하고. 지금이야 네이버의 수익이 전체의 70%지만 이 때만 해도 한게임의 수익이 전체의 70%였다. 거기에다가 한게임을 통해 네이버를 알릴 수 있었고 한게임은 네이버의 기술을 이용해서 서버라던가 트래픽 관리를 할 수 있고. "1+1=2" 아니라 "1+1=5"가 되는 계산이었다. 합병 당시 주위의 우려도 많았다고 한다. 게임과 검색은 전혀 다른 서비스이기 때문에 이질적인 두 조직의 문화를 융합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 합병 시 몇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두 기업의 이질적인 문화이다.  그러나 "한게임"과 "네이버"는 이를 해결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NHN은 폭발적으로 성장을 했다. 그러나 그 성장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는데 어느 정도 수익은 있었지만 그렇게 돈 되는 수익은 없었다는 것. 한게임이 무료 서비스 였기 때문에. 회원수가 많아도 직접적인 수익은 거둘 수가 없었다. 거기에 IT 버블이 가라앉으면서 투자심리는 얼어붙고 전반적인 분위기 침체로 막막했다. 당시 재무 상황은 그대로라면 향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막막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게 한게임의 유료화. 유료화...이 유료화 라는게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회사가 망하는 지름길. 대표적인 예로 "프리챌". 프리챌은 네이버, 다음 이전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터넷 포털(?)
커뮤니티였다. 그러다가 유료화를 하면서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가 다음 "카페"로 간 걸로 아는데.. 이처럼 유료화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했다. 한게임 같은 경우, 유료화 하기 이전, 유료화 한다는 말이 새나가서 사이트는 반대하는 회원들로 마비가 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범수는 유료화를 했다.
한게임 회원 중 1%만 유료서비스를 이용해도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엔 반대하던 직원들도 김범수의 설명을 듣고 하나 둘씩 뜻에 따라줬다. 유료화 첫날,  1억원 가까운 놀라운 매출을 올렸고, 한달 만에 7억원을 기록하는 폭발적 성과를 거뒀다. 그는 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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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략 (출처 :
www.inews24.com 의 [김광일의 릴레이 인터뷰])

◆ 무한질주, NHN의 전성시대

“해진아, 성공했어”, “범수야 고맙다”

2001년 3월말, 공동대표인 이해진과 김범수는 손을 맞잡고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고민끝에 한게임 유료서비스를 시작한지 한달만에 7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단숨에 네이버 배너광고매출을 앞지르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기 때문.

2000년 겨울, 당시의 인터넷 거품논쟁은 살을 에이는 추위보다 더 매서운 한파,그 자체였다. 투자심리는 꽁꽁 얼어붙었고, 벤처산업계는 금새라도 공멸의 나락에 떨어질 것같은 분위기였다.

한게임 유료화는 이런 상황과 맞물려 어쩔수없이 선택한 고육지책의 카드였다. “계속 적자였죠. 유료화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유료화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NHN은 2001년 6월,네이버 검색서비스 유료화를 개시,또한번 탄탄한 수익모델발굴에 성공한다.

합병이후 두번에 걸친 유료화성공으로 NHN은 2001년에 매출목표치(120억원)의 두배가 넘는 29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일부 서비스만 돈을 받는 프리미엄개념의 유료화를 도입한 탓에 이용자들의 반발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합병의 잠재력은 해가 바뀐 2002년,폭발했다. NHN은 지난해 무려 760억원의 매출에 영업이익 250억원을 기록하며 수익모델부재,거품의 진원지로 꼽히던 닷컴기업의 무용론을 일거에 잠재우며 코스닥 황제주로 급부상했다.

NHN의 거칠것없는 질주는 올해 매출 1300억원,500억원규모의 영업이익을 자신할만큼 가히 폭발적이다. 코스닥을 대표하던 엔씨소프트,다음커뮤니케이션즈을 시가총액에서 차례로 제친지 벌써 오래전의 일일만큼 NHN은 이제 명실상부한 코스닥 대표주로 대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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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료화는 성공했고 그 후 네이버의 지식in과 검색 키워드 유료화로 NHN은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다. NHN은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그래서 "Blue Ocean" 에서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내 국내 최고의 인터넷 포탈이 되었고 지금도 이는 계속 되고 있다.

김범수. 그에 대해서

김범수는 성공했다. 그가 성공한 이유는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여러가지가 있지만 위의 이유들이 성공하기 위해 뒷받침되었던, 어떻게 보면 이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되고 오히려 위의 내용들보다 더 느끼는 것이 많은 게 바로 이 것. 그의 "사람됨" 이다. 그는 CEO가 되려면 "조조보다는 유비가 되어라" 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다. 김범수는 유비를 선택했다. 유비의 장점은 "인화력"이다.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능력. 유비 본인 자체는 그렇게 큰 능력이 없다. 지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고 무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의 주위에는 제갈량, 관우, 장비, 조운 등 수많은 인재들이 있었다. 김범수 씨도 그렇고 이해진 씨도 그렇고 그들이 성공한 건 그들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니다. 분명 그들 자신들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아무리 자신이 뛰어나다고 해도 절대 혼자로선 모든 걸 할 수 없다. 더더욱 요즘 같은 시대에는.
김범수 씨에겐 좋은 동료가 있었다. 삼성 SDS를 때려치고 한게임 창업을 준비할 때 그의 옆에는 "문태식"이라는 동료가 있었다. (문태식 씨는 NHN Games 대표, NHN USA 대표를 하다가 지금은 김범수 씨와 함께 미국에서 TF장을 하고 있음. 역시 직위에 연연하지 않는;;) 다들 월급 못 받아 나가도 이 분은 끝까지 곁에 있으며 같이 동고동락을 하였다. 또한 삼성
SDS 입사 선배이자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제의했던 김정호 씨(지금 NHN 차이나 대표), 일본 사업을 성공시킨 그의 친구 천양현(NHN Japan 대표)이 있다. 또한 합병 파트너인 이해진 씨와도 평생의 동반자다. 이 둘은 합병 후 초창기에 공동 대표인 시절에도 이해진 씨는 검색을 김범수 씨는 게임을 담당함으로써 시너지를 냈고 그 후 NHN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해진 씨가 외부 활동(언론이나 강연 같은~)을 김범수 씨가 내부 활동을 하다가 이해진 씨가 CSO로 내부로 들어가면서 김범수 씨가 외부로 나서 단일 대표를 하는 등 둘은 서로 음양을 오가면서 기업을 잘 이끌어갔다. 보통 기업에 대표가 둘이 있으면 대립이 생기기 쉬운데 이 둘은 서로 보완을 하면서 장점을 극대화시켰다.

다음은 이해진 씨가 김범수 씨에 대해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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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앞세운 예의바른 경영자"

김범수 사장과는 삼성SDS 연구소 동기로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00년 7월 각자의 창업회사였던 네이버컴과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합병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합병 후 2003년까지 3년여를 김범수 사장과 공동대표로 일하면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김사장만한 사람도 없다고 느꼈다. 편안한 외모 그대로 침착하고 원만한 성격의 김사장은 말로 내뱉기 전에 항상 생각을 깊게 하고 말을 아끼는 타입이다. 모든 회의석상에서도 사장의 의견이 주는 무게감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실무자들과 다른 사람들의 말을 끝까지 들은 다음에야 어떤 말이라도 시작하는 편이다.
또한 김사장은 사람을 가장 소중한 재산으로 생각해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한 회사의 말단사원일 때부터 NHN의 대표인 지금까지 누구에게나 항상 변함없이 예의바르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김사장에게는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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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앞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그 혜안을 믿고 밀어불일 줄 아는 과감한 "승부사" 기질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여기에는 그의 "사람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해진, 김범수. 이렇게 두 명의 창업자에 대해서 정리를 하면서 내가 이들처럼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한가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1. 비즈니스 아이템 : 이는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고 기술이 될 수도 있다. 하여튼 남이 하지 않은 걸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남이 하지 않은 게 남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즉 진입 장벽이 낮으면 안 된다. 남들이 들어오지 않는 Blue Ocean을 찾아서 들어가야 하는데 그 Blue Ocean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어서 금방 Red Ocean이 되어버리면 창업의 "메리트" 가 사라지게 된다. 이런 게 기술이면 우선 특허로도 보호가 되고 그러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낫다고 볼 수 있다. 구글이나 네이버, 한게임도 다 새로운 기술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남들이 하지 않은 아이디어로 창업을 하게 되면 이 아이디어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이긴 하나 알게되면 곧 따라할 수 있는 거라면(마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생각하기는 힘드나 따라하긴 쉬운..;) 정말 뛰어난 사업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먼저 시작한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더 나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하고 여러가지 차별화 등을 모색해야 하기에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기때문에 내 경우는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야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근데 그 만드는 걸 엄한 걸 만들면 안 된다. 미래에 반드시 돈이 되는 걸 만들어야 한다. 그걸 찾아내고 그게 돈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게 창업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2. 인재 : 절대 나 혼자는 못한다. 같이 할 수 있는 인재가 있어야 한다. 이건 나 자신에게 달려 있는 거다. 주위에 좋은 친구나 동료가 많고 적음은 내가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

3. 자금 :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창업자금이 필요하다. 이해진 씨 같은 경우는 삼성 SDS 사내 벤처였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었고 김범수 씨는 PC방 사업으로 마련했다. 우선 나 같은 경우는 창업경진대회에서 상을 타거나 벤처투자자들과의 contact을 통해 마련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나 자신에게는 돈이 전혀 없기 때문에ㅠㅠ

4. 모험정신 : 실패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리스크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무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분석을 통해 승산이 있다면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아직 이런게 부족하다. 이런 이야기에 관심도 많고 여러가지 비즈니스 아이템들도 생각하고는 있지만 정작 중요한 "실행"은 아직까지 하나도 못하고 있다는 거. 그러나 이번 년에는 꼭 해볼려고 한다. 꼭..!

NHN에 대해서는 정말 여러가지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건 NHN에 대해서 따로 글을 쓰면서 웹 2.0이라던가 Google 같은 회사와 비교를 해보면서 또 정리해볼려고 한다^^;

아....긴 글 쓰느라 힘들어죽는줄 알았다. 그래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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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9 14:54 2007/02/0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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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 CSO, 이해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해진. 1967년생. 올해로 41세이다. 그는 SNU 86학번으로 CS로 학사를 마치고 KAIST에서 1992년에 CS로 석사 학위를 받는다. 랩은 황규영 교수님의 DB lab으로 lab homepage의 Members의 Alumni에서 이해진을 찾아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석사를 마치고 삼성 SDS를 입사해 그 곳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네이버컴이라는 사내 벤처를 창업하여 이를 키워 한게임과 합병으로 NHN의 최대주주가 되었으며, 김범수 한게임 대표와 함께 공동 CEO로 NHN을 운영하다가 최휘영 현 NHN CEO에게 CEO를 물려주고 현재는 NHN CSO로 있다. 그는 코스닥 주식갑부 1위이며, NHN 주식의 5.2%를 가져 이의 평가액이 3000억이 넘는다. 그는 이제 갓 40대 초반의 나이로 공학도들이 그리고 엔지니어들이 꿈꾸는 젊은 IT 부자가 되었다. 그는 분명히 우리와 같은 공학도들, 특히 CS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Role Model이 된다고 생각하여 그에 대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함께 새로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그의 성공요인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분석하고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자기 계발을 위한 25% rule

이해진 씨는 삼성 SDS에서 일하는 평범한 엔지니어였다. 그러던 그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가 시작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해진 씨는 삼성SDS 근무 당시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직장에서 자기계발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생각에 `직장에서 보내는 시 간 중 25%를 순수하게 자기계발을 위해 쓰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꾸준히 지켜 왔다. 이해진 씨는 삼성 SDS에 있던 5년간 일과 시간의 25%를 사용하여 창업 아이템으로 검색엔진으로 선정을 하고 사내벤처 1호인 '웹글라이더팀'을 만들어 3년간의 각고 끝에 검색엔진을 개발했다. 사내 벤처로 독립하기 위해 기업이름을 고심하던 끝에 naver라는 이름을 짓고 -"navigate(항해하다)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의 합성어"이다 - 1999년 6월 네이버컴(주)를 설립하여 벤처기업으로 독립시켰다. 네이버에는 국내 최고 검색기술력으로 한국인들이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원하는 정보를 향해 제대로 찾아가게 하자는 속뜻이 담겨 있다. 네이버의 상징이기도 한 로고 옆 탐험가 모자는 당시에는 새로웠던 '인터넷'이라는 환경에서 이를 탐험 하는 이용자들의 가이드가 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포털사업에 뛰어들어 이미지 검색, 뉴스 검색 등 다양한 검색 결과를 한 페이지에서 보여주는 통합검색을 세계 최초로 도입, 한글검색시장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한게임과 합병을 하여 NHN(주)(Next Human Network)로 회사명을 변경을 하고 2002년 코스닥 등록 후 NHN은 2년도 되지 않아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랐다. 최근 NHN의 시가총액은 6조원을 넘어섰다. 

다음은 이해진 씨가 쓴 걸로 추측되는 글이다. (이 글의 출처는 익살님의 블로그이며 진짜로 loco에 이 글이 있나 하고 가봤는데 보드 폭파해서 그런지 없긴 한데 그래도 어디에 썼던 간에 이 글을 이해진 씨가 쓴 건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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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loco n/C/r

내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은 남들이 보기에는 밋밋하기 짝이 없는 대기업직장생활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92년 삼성 SDS연구소에 입사한 후 5년 동안 거쳤던, 짧았다면 짧았던 직장생활이 내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당시나는 대기업 풋내기 사원으로서 남보기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그때의 시간은, 지금 못지않은 치열함으로 남아있다. 기업 초년병이었지만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직장에서 자기계발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 외국 기업이 직원들에게 요구했다는 "25%룰"을 벤치마킹했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의 25%는 순수하게 자신의 계발을 위해서만 쓰라 는 룰이였다. 당시 이 룰에 따라 하루 8시간 중 2시간을 자기계발에 쏟았다. 남들 8시간에 하는 회사 업무를 6시간에 하려니 다소 무리도 따랐지만, 퇴근 시간 이후 잔업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2시간의 자기계발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기계발의 주제는 "내가 설계하고 개발할 만한 기술이 무엇일까"였다. 3년 이상을 이 주제에 몰두해서 얻은 결론은 검색엔진이었다. 지금의 네이버가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회사를 설득하고 기본 기술을 수집하고 3명의 신입사원들을 "유혹"해서 팀을 구성하고.. 분주했지만 절로 흥이 나서 일에 몰두했다. 97년부터 2년간 사내벤처 네이버 소사장으로 일한 후 99년 분사, 네이버컴 사장으로 독립했다. 결정적 장면은 반드시 극적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흔히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고 남들보다 빨리 성장하고 싶을 때, 자기의 환경부터 바꾸려고 한다. 마치 공부 열심히 하겠다면서 독서실부터 바꾸는 학생들처럼. 그러다보니 단숨에 현실을 뒤바꿀 만한 결정적인 사건을 찾아다니고, 지금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유학을 떠나기도 하고, 난생 처음 해보는 분야에서 용감하게 창업을 한다거나, 일하던 부서를 바꿔 달라거나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진정한 결정적 장면은 결국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환경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뭔가를 성취하겠다는 열정만 있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복사만 시켜도 남들보다 뭔가 다르게 업무를 개선시키고 창의력을 발휘한다. 질량이 커다란 물체의 주변 공간은 구부러져 있다고 한다. 열정이 가득한 사람은 환경을 변화시킨다. 환경이 자신에게 맞춰져서 내가 환경의 중심이 돼야 한다. 문제가 있는 것은 환경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다. 오늘도 하루종일 일하면서 아무런 열정이나 성취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빨리 자신의 문제를 찾아서 자신을 변화시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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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순히 하루에 25%의 시간을 자기계발에 투자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운이 따랐으며 그는 그 운을 잘 살려 멋지게 성공하였다. 분명 네이버는 예전(2000년초)에만 에도 순위권에는 전혀 들지도 않은 조그마한 벤처기업이었으며, 한게임과의 합병시에도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네이버를 있게 한 지식 iN, 키워드 광고 등은 네이버에서 먼저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여러가지 위험요소와 불안요소들을 잘 대처하고 극복하여 지금의 네이버를 만들어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해서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고 본다. 이해진 씨의 글에서 가장 와 닿는 건 환경을 탓할 필요가 없다는 거. 우리는 흔히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을 가야 한다. 우리 학교도 시험기간만 되면 도서관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정말 많아진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은 별 상관없다는 거. 방에서 공부해도 공부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컴퓨터 안 킬수도 있고 안 잘 수도 있고 오히려 가장 조용한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다. 오히려 도서관 가면 친구들하고 수다 떠느라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랬기 때문에...;;) 지금 시대가 일제침략기도 아니고 옛날처럼 신분제사회도 아니고 환경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냐는 이해진 씨의 글.  뭔가를 성취하겠다는 열정만 있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해낼 수 있고 오히려 그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해진 씨의 지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이해져 가는 나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좋은 말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환경 따위에 굴복하지 말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내 열정을 다하라는 것
. 언뜻 보기에는 간단한 말 같아도 이러한 태도 하나가 미래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이미 이해진 씨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 증명이 되고 있다.

#2. 훌륭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말 뛰어난 인맥을 가지고 있다. IT라는 바닥이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넓어보일지 모르겟지만 그 속을 자세히 보면 대단히 좁은 바닥이다.특히 지금 잘나가는 IT 업계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SNU, KAIST 출신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대부분이 같은 학번이나 동기들이다. KAIST만 보더라도 NHN의 이해진, 김범수, 넥슨의 김정주, XL게임즈의 송재경, NC소프트의 김택진, 네오위즈의 나성균, 박진환 등 IT업계를 대표하는 이들. 이들은 정말 얽히고 설켜 있다. 그런 점이야 말로 이들이 모두 성공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큰 장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 끈끈한 인맥. 이 인맥이 이들에게는 서로 Win-Win이 되는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그의 인맥을 크게 KAIST와 삼성 SDS로 나누고, 그 중에서도 이해진을 중심으로 몇몇 인물들을 보면...

1) KAIST : 대표적인 인물로 김정주 씨가 있다. 김정주 씨는 이해진 씨는 SNU CS 학부 동기이다. 둘은 KAIST CS 석사도 같이 다녔다. KAIST에서는 둘이 "룸메"였다고 한다. 이런 둘에 대한 일화(통닭 때문에 싸우던 룸메이트들이 수천억원 자산가로.. 출처 :조선일보의 백강녕 기자의 블로그)가 있는데 fiction이 좀 가미되어 있긴 하지만 두 분이 친하다는 건 사실이라 생각한다. 이 둘은 각각 인터넷 업계의, 게임 업계의 최고의 기업들을 창업하며 벤처신화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김정주 CEO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자세히 적어볼려고 한다. NHN의 2대 주주는 엠플레이이다. 엠플레이의 지분 72%는 넥슨이 가지고 있다. 이처럼 둘은 개인적인 친분도 깊지만 지분도 서로 얽혀있는 비즈니스적으로도 상당히 긴밀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겉으로는 그게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래서 NHN과 넥슨의 합병설은 간간히 흘러나오고 있으며, 합병을 하지 않아도 넥슨은 NHN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넥슨에서는 단순한 투자일 뿐 경영진 입장에서는 접근하지 않겠다고 한다. 룸메이트였던 두 학생이 시간이 흘러 우리나라 IT업계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이 된 걸 보면서 나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이 ㅠㅠ 정말 멋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2) 삼성 SDS : 김범수 씨와는 우선 서울대 동기이다. 그러나 이해진 씨는 CS이고 김범수 씨는 IE였기 때문에 학부 때는 서로 몰랐다고 한다. 둘이 만나게 된 건 삼성 SDS 였다. 둘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창업했지만 삼성 SDS라는 인연으로 인해 서로의 needs에 대해서 쉽게 알 수 있었고 성공적인 M & A를 해낼 수 있게 된다. 또한 현재 CEO인 최휘영 씨도 삼성 SDS 출신이고 NHN 중국합작법인 대표인 김정호 씨도 삼성 SDS 출신이다. 미국 대표인 문태식 씨도 삼성 SDS이다. NHN을 이끄는 핵심인물들이 대부분이 삼성 SDS 출신인 것이다. 현재 그레텍 대표인 배인식 씨도 이해진 씨가 삼성 SDS에 있을 때 주임이었다. 이처럼 삼성 SDS 출신 인물들이 이름을 떨치면서 삼성 SDS는 국내최고 'IT사관학교' 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인맥은 정말 중요하다. 지금 시대에서는 뭐를 하던간에 절대로 혼자 해내기에는 불가능하다. 개발을 함에도 그러하고 비즈니스를 함에도 그러하다. 이런 시대에서 인맥은 그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좀 말이 안 되는 비유긴 하지만 아무리 local machiine이 뛰어나도 network로 연결된 분산 machine을 당해낼 수 는 없다. 그래서 요즘 활발히 연구되는 것이 분산 컴퓨팅이 아닌가? (좀 딴 길로 새는 말이긴 하지만;;)
좋은 human network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좋은 학교를 가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직장을 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의 태도, 성격'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가도 나 자신의 태도나 성격에 문제가 있으면 쉽사리 인간관계를 만들 수 없다. 처음 보는 사람과 얘기를 했을 때, 몇 번만 얘기해봐도 "아! 이 사람하고는 정말 친해지고 싶다' 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래?'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어느 쪽이 되느냐 하는 건 자기 자신에 따라 달려있다. 돈보다 중요한 자산이 인간관계라고 한다. 지금 성공한 IT업계의 리더들을 보면 모두 끈끈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인간관계는 돈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의 인생을 나타내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지금부터라도 나 자신을 바꾸고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3. 한게임과의 합병

네이버와 한게임의 M&A는 국내외 대학에서 수업시간에서 언급할 만큼 가장 성공적인 M&A 사례로 뽑힌다고 한다. 이게 좀 과장이라고 할 지라도 두 회사 간의 M&A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 건 사실이다. 네이버는 당시만에도 자금과 인력은 많았지만 다음, 라이코스에 밀려 수익모델이 없는 그저 그런 검색업체에 불과하였고 한게임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회원수를 감당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했다. 두 회사는 이미 PC방 공동마케팅을 하고 있었고, 한게임을 네이버사이트에 제공하는 대신,네이버컴은 장비를 한게임쪽에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었다. 둘은 합병을 통해 서로의 절박한 위기상황을 해결할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루에 10만명씩 회원수가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이를 소화할 준비가 안돼있는 한게임쪽의 절박한 위기의식,이미 10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수익모델부재와 다음, 야후, 라이코스에 늘 밀려 골머리를 앓고있던 네이버컴의 한계상황이 서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한게임은 네이버컴의 풍부한 자금과 인력을 활용해 폭증하는 트래픽을 소화하면서 사업을 확장할수 있을 거라 판단했고, 네이버컴은 수익모델부재를 한게임을 통해 해결하고, 한게임의 엄청난 트래픽과 회원수를 이용, 포털사이트 만년 5위의 한계를 극복할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입사동기이자 친구인 둘은 그렇게 한달만에 합병에 합의했다. 합병이후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잇따른 유료화의 성공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매출성장세로 이어졌다.
한게임의 유료화 성공 이후 검색서비스 유료화  성공. 두번에 걸친 유료화 성공으로 NHN은 이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대표 IT 기업이 되었다. 이 합병이 실패했으면 네이버컴, 한게임 두 회사 모두 망했을지도 모른다. 운이 좋은 건지 그 두 회사의 실력이 좋은건지 둘 다 작용한 건지는 몰라도 하여튼 M&A는 획기적으로 성공하였다. 이 두 회사의 M&A에 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적어보도록 하려고 한다. (공부할 필요도 있고 해서^^;)

여러가지 생각...

이해진 씨는 정말 수많은 창업자 중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나머지 실패한 사람들은 빚더미에 앉아있을 수도 있고 창업실패의 쓴 맛을 뒤로 한 채 그냥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진짜 이해진 씨는 극소수의 확률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누구나 창업을 한다고 해서 성공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수많은 리스크가 있고 성공할 확률은 몇 %밖에 안 되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한데 이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으며, 자신의 돈으로 창업하던 간에 투자를 받아서 창업하던 간에 실패하면 자신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도박인 것이다. 다만 합법적인 도박이라고 해야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이 있다면 열정이 있다면 창업은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늙기 전에 말이다. 물론 나이를 먹어서 창업할 수도 있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어갈수록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는 점점 커진다. 나이를 먹으면 가족이 생기게 되고 그 입장이 되면 창업을 생각한다는 건 거의 무리라고 생각한다. (정말 확실한 아이템과 투자가 있다면 모를까..) 그만큼 결심하기가 힘들어진다. NHN에서 인턴으로 어떤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분은 아침 10시까지 출근인데도 불구하고 매일 8시까지 출근을 하여 2시간동안 자기계발을 하신다. 그렇게 하신지 벌써 몇 년 째가 되간다고 하신다. 그 분이 그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여 성공하실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그 분보다 훨씬 젊은데..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샘솟는다. 그 분이 술자리에서 젊었을 때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꼭 창업을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자금이 부족하면 기업을 찾아다니며 투자를 받으라고 하셨다. 젊어서 그 정도도 안 할려고 하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꿈이 뭐냐고 물으면 KAIST 가서 벤처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네가 벤처를 하면 나를 거기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농담도 하기도 했다. 그 때가 한참 IT 버블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난 마음만 먹으면 창업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대학 와서 느낀 게 그렇게 애들 장난처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할려고 마음을 먹으면 진짜 올인을 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도 성공할 지 안할 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사실을 알게 되고 또 학과 생활을 하면서 "벤처, 창업" 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 서서히 잊혀져 갔다. 저번 가을학기에 지금 CS 석사간 친구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창업 얘기가 나와서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한 번 해보자~ 하고 얘기했었는데, 학교를 가게 되면 진지하게 얘기를 해봐야겠다.

몇몇 생각한 아이템들은 있지만 이것들 중에서 비즈니스 모델과 연결되는 것은 아직 없다. 당장 올해 창업하지는 않아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내 나이. 벌써 24살이다. 이제 슬슬 인생에 있어 모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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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5 18:43 2007/02/0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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